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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향토음식, 산업의 불빛 아래 피어나는 바다의 미학과 인간의 손맛

by foodeat2 2025. 11. 3.

 

울산 향토음식 관련 사진

울산은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다. 조선과 석유화학의 불빛 뒤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 있다. 고래고기, 장어구이, 미역국, 활어회 — 이 모든 음식에는 바다와 삶이 맞닿은 울산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본문에서는 울산의 음식이 어떻게 도시의 역사, 정체성,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울산, 산업의 불빛과 바다의 숨결이 공존하는 도시

울산이라는 도시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거대한 공장 굴뚝과 밤을 밝히는 조선소의 불빛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불빛 아래에는 다른 빛이 존재한다. 바로 파도 위에 반짝이는 바다의 빛, 그리고 그 바다를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음식의 빛’이다.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지만, 그보다 오래된 울산의 본질은 바다였다. 동해의 깊고 푸른 물결, 남해와 맞닿은 완만한 해안선, 그리고 이를 따라 자리한 작은 어촌들은 이 도시의 영혼을 이루고 있다.

울산의 식탁은 늘 ‘바다의 시간’ 위에 놓여 있었다. 해가 뜨기 전 방어진항에서 막 잡아온 생선이 손질되어 아침 밥상에 오르고, 어부의 손에 묻은 소금기와 바람의 냄새가 그대로 음식에 녹아들었다. 울산 사람들은 늘 바다의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미역국 한 그릇, 장어구이 한 점, 고래고기 수육 한 접시에는 단순한 영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공동체의 기억이었다.

오늘날의 울산은 산업과 기술, 그리고 기계의 도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울산의 향토음식은 단지 ‘먹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이어져온 문화적 유산이다. 이 글에서는 울산의 대표 음식들을 중심으로, 그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지역의 정신, 그리고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울산의 맛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본다.

고래의 도시, 울산의 상징이 된 고래고기

울산의 향토음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단연 ‘고래고기’다. 울산은 한반도 유일의 포경기지였으며, 1960~80년대까지 전국의 고래잡이 배들이 방어진항에 모여들었다. 그 시절 울산의 거리는 고래고기 냄새로 가득했고, 고래기름은 등불과 산업용 자원으로도 쓰였다. 그러나 단순히 산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고래는 울산 사람들의 삶과 전통 속 깊숙이 자리한 존재였다.

울산의 고래고기 요리는 단순히 ‘육류 대체식’이 아니다. 부드럽고 진한 감칠맛, 지방이 녹아드는 고소함, 그리고 미묘한 해양성 풍미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낸다. 특히 울산에서는 부위별로 고기의 질감과 맛이 세분화되어 있는데, ‘껍질고기’, ‘배살고기’, ‘꼬리살’, ‘혀살’ 등 각각의 부위가 다른 요리에 쓰인다. 껍질은 데쳐서 수육으로, 살코기는 양념장에 재워 회덮밥으로, 꼬리살은 매운탕이나 장조림으로 사용된다.

울산 고래고기의 진정한 매력은 그 지역적 서사에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포경 금지 이후, 울산의 포경업은 중단되었지만, 울산 사람들은 그 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고래문화마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포경선 복원, 고래박물관, 전통 음식 시연 등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열리는 ‘고래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방문객이 몰려들어 고래고기 시식과 해양문화 체험을 즐긴다. 이제 고래고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울산의 정체성과 추억, 그리고 세대 간 연결의 상징이 되었다.

한 노상인은 이렇게 말한다. “고래는 울산의 피요, 숨결이었어요. 우리 세대는 그걸 먹으며 자랐고, 그 맛이 곧 삶이었죠.” 그 말 속에는 단순한 향토음식 이상의 정서적 울림이 담겨 있다. 고래고기를 먹는다는 건 울산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삼키는 일이다.

태화강과 정자항, 생명력을 담은 장어구이의 철학

울산의 또 다른 대표 음식은 장어구이다. 태화강 일대는 오래전부터 민물장어가 풍부하게 서식하는 곳이었다. 울산의 여름 저녁, 강가를 따라 늘어선 장어집들은 숯불 냄새와 고소한 양념 향으로 가득하다. 장어는 지방이 많고 단백질이 풍부해 예로부터 ‘보양식의 왕’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울산 장어의 명성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그 품질은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울산식 장어구이는 간장과 고추장을 혼합한 양념에 장어를 재워 두었다가 숯불에 천천히 구워낸다. 숯불의 열기와 장어의 기름이 맞닿으며 터져 나오는 불꽃 소리, 그 위로 번지는 달콤짭조름한 향은 울산 여름의 상징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은 장어를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풍성한 감칠맛과 바다 내음이 퍼진다. 장어구이는 단순한 요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주 앉아 장어 한 점을 나누는 순간, 그것은 회복과 위로의 의식이다.

장어탕 또한 울산만의 별미로 꼽힌다. 장어 뼈와 머리를 오랜 시간 푹 고아 만든 국물은 진하고 묵직한 맛을 낸다. 여기에 들깻가루와 대파를 넣으면 고소함이 배가되고, 매운 고추를 더하면 얼큰한 맛으로 변한다. 이런 ‘조율의 미학’이 울산 음식의 특징이다. 재료의 본질을 살리면서도, 계절과 입맛에 따라 섬세하게 조절하는 감각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있다.

바다의 선물, 미역국과 회의 정갈함

울산의 해안은 미역과 다시마가 잘 자라는 천혜의 바다다. 특히 남목과 방어진 지역은 예로부터 미역 양식의 중심지였다. 봄철이면 바닷가에 미역줄이 가득 늘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은 마치 바다 위의 숲처럼 장관을 이룬다. 울산 미역은 잎이 두껍고 향이 강하며, 끓이면 국물이 진하고 색이 깊다. 울산의 미역국은 멸치와 조개, 다시마로 우린 육수에 미역을 푹 끓여내어 구수하고 바다 내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울산에서는 미역국을 단순히 생일상에 올리는 음식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미역국은 ‘감사의 국’이자 ‘회복의 음식’으로, 일 년 내내 즐겨 먹는다. 특히 출산 후 산모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나누어 먹는 풍습은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다에서 얻은 생명으로 새로운 생명을 축복하는 행위 — 그것이 울산 미역국의 진정한 의미다.

울산의 회 문화 역시 특별하다. 정자항과 방어진항에서는 새벽에 잡은 생선이 곧장 회센터로 옮겨져 손님상에 오른다. 울산 회의 핵심은 ‘신선함’이다. 광어, 도다리, 감성돔, 방어 등 계절마다 다른 어종이 주인공이 되며, 특히 겨울 방어는 지방이 올라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낸다. 회를 다 먹은 뒤 남은 생선으로 끓이는 매운탕은 ‘울산식 정리미학’의 정수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도시의 피로를 녹이고, 바다의 향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음식이 담아낸 울산 사람들의 정신

울산 사람들은 음식에 있어 ‘정직함’을 미덕으로 여긴다. 불필요한 꾸밈이나 과한 향신료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존중한다. 장어는 소금과 숯불로만 구워도 충분히 맛있고, 미역국은 바다의 향으로 이미 완전하다. 고래고기 역시 양념을 최소화하여 재료 자체의 풍미를 강조한다. 이런 단순함은 울산 음식의 정체성이며, 도시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겉으로는 강인하지만, 속은 따뜻하고 진심이 있다.

또한 울산의 음식 문화는 ‘공유의 문화’다. 대규모 산업단지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이 퇴근 후 한 상을 나누는 문화, 명절마다 어촌마을에서 잡은 생선을 함께 나누는 전통이 여전히 이어진다. 그 식탁 위에는 도시의 소음과 기계의 냄새 대신, 인간의 온기가 남아 있다. 이런 음식 문화가 울산을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닌 ‘살아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준다.

산업의 도시에서 인간의 도시로, 울산의 밥상이 전하는 이야기

울산의 향토음식은 도시의 역사 그 자체다. 고래고기의 묵직한 풍미에는 세월의 깊이가, 장어구이의 불맛에는 인간의 땀과 열정이, 미역국의 구수한 향에는 바다의 숨결이 담겨 있다. 산업의 불빛이 도시를 비출 때도, 울산의 식탁은 언제나 사람의 손으로, 사람의 온기로 채워져 왔다.

울산의 음식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어부의 손끝, 장인의 불길, 어머니의 국물, 그리고 노동자의 저녁.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룬다. 우리는 그 음식 한 그릇 속에서 울산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울산은 여전히 산업의 도시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맛이 살아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맛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